숏폼의 미디어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쩐지 해로운 것 같다. 내가 고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래.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많던데, 나도 주식을 시작해야 하나? 책을 읽는 건 멋있지만 지루해, 우리 아이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래, 오늘 갔던 카페 직원이 불친절해서 화가 나, 나는 어떤 야구 팀을 응원해야 하지? 나는 밴드 음악을 좋아해, 나도 중요한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싶어, 축의금은 얼마로 내야 하지? 무료하고 따분해, 교회나 나가볼까? 너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 재밌는 일 좀 없어?
어째서 한 인간은 해야만 하는가? 중력. 중력은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설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저마다 말을 한다. 말해지는 것들과 말해지기를 요구받는 것들은 또한 발 딛고 설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불쑥 우리가 가벼워지고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짓눌리는 것과 함께 항상 받는 힘은 스스로 땅을 밀어내며 서 있는 힘이기 때문에 중력이 느슨해지면 떠오르는 듯 느껴진다. 일상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일이라 한 번 떠오르고 나면 대개는 다시 내려가 걸어 다닐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찾아 발을 붙인다. 한 인간은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느슨한 중력으로 떠올랐던 아득한 순간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다시 떠오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떠오른 채로 머물러 보기도 한다. 《빈자리》는 말해지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빈자리를 다시 드러낸다. 빈자리는 떠오른 상태에서 바라본 땅에 있다.
달관하라 / 미친 악담도 더는 내 멘탈을 뚫지 못해, 〈미라쥬〉
있었곤 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 이내 나의 지금 인간관계 반경을 / 돌아봄으로 번진다 / 내 옆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감사해야 하는데 / 쉬이 표현하지 못해, 〈단상: 불나방〉
서정은 안쪽을 향하여,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청자를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로 떠오르게 한다. 공간감 있는 가성과 아르페지오, 프렛을 옮기며 기타 줄에 손가락이 쓸리는 소리, 악기처럼 조심스레 겹쳐 사용한 보컬, 다정하게 쌓아올리는 텐션과 꽉 찬 릴리즈. 서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장치들 사이에 턱 하고 놓여있는 비서정의 말들이 《빈자리》에 있다. 멘탈은 서정적 음악이라는 문자에 작용하는 관습의 바깥에 있는 말이다. 인간관계 반경 또한 그렇다. 일관된 소리의 테마를 유지하는 장치들을 통해 서정의 공기를 만끽하며 떠오를 준비를 하던 청자의 발은 단숨에 땅에 붙게 된다. 소리는 여전히 떠 있다. 청자에게 땅을 돌려주는 이 독특한 단어들이 그로 하여금 다시 떠오를 것을 요청한다. 느슨한 중력의 상태에 가해지는 비서정의 위협은 두 곡의 간격을 두고 발생한다.
첫 두 곡을 구성하는 〈디퓨저〉와 〈기억에 의존한 초상화〉는 청자를 지나간 인연을 돌아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떠오름. 세 번째 곡인 〈미라쥬〉의 가사는 첫 두 곡과는 다른 것을 말한다. 자연물을 호명하며 다가올 시간을 그리는 와중, 어쿠스틱 기타 줄을 퉁기는 소리로만 강조하듯 들려오는 비서정의 말에 다시 땅에 선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니야. 다시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곡인 〈별난 사람들〉과 〈겨울에 접어들 무렵〉, 첫 두 곡이 세운 자리에 다시 서게 된다. 떠오름. 서로 다른 두 곡을 합쳐둔 듯한 여섯 번째 곡인 〈단상: 불나방〉의 전반부에서 청자는 다시 불편한 입장에 처한다. 해야만 하는 중력, 무작위 타자의 합의된 듯한 말들이 주는 힘을 받는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니야. 말로 할 수 없는 뭔가가 더 있어. 〈단상: 불나방〉의 후반부와 다음 곡인 〈희끄무레〉가 다시 첫 두 곡이 세운 자리에 서게 한다. 떠오름.
서정적 테마와 불쑥 발목을 잡는 비서정의 말들의 대비가 떠오름만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 《빈자리》에서 비서정의 말들이 주는 것은 그럼에도 그것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확인이기도 하다. 일상의 공간인 땅은 떠올랐을 때 가만히 지켜보았던 빈자리임과 동시에 그럼에도 서야만 하는 자리이다. 빈자리는 내가 있던 자리이다. 떠오른 상태의 인간은 지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누릴 수 없다. 다시 언제 내려오려나 기다리던 사람들, 내 옆에 남아 있는 자들과 함께 서야 한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은 종종 우리를 다시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공중에서 표류하는 자들은 속지 않으려 한다. 세속에서 모순을 찾는다. 냉소로 낭만을 가린다. 그러면서 속지 않는 자들은 방황한다. 비서정의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하는 청자에게 서정은 중력으로 작용한다. 공중에서 발 디딜 곳을 찾게 한다.
냉소적 지식으로 속지 않으려는 태도는 중력이 느슨해지는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한다. 서정이 중력으로 작용하는 동안의 《빈자리》는 공중도둑, khc와 모리베의 포크트로니카 계보를 수프얀 스티븐스의 색채로 잇는 데뷔작에 그친다. 비서정의 말들은 찝찝한 채로 남아 별점을 깎을 근거가 된다. 대신 비서정의 말들이 발목을 잡아 내리끌도록 둘 때, 떠오름과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것을, 하늘을 볼 때와 떠올라 땅을 바라볼 때의 빈자리를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떠오른 상태를 알아챌 수 없다. 《빈자리》에서 내가 떠올랐음을 발이 땅에 닿았는데도 아직 떠 있는 소리를 통해 느낀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니야. 다시 하늘을 바라보고는 빈자리를 느낀다. 땅에 내려와 보는 하늘에도 빈자리가 있다. 이내 다시 중력이 느슨해질 때 떠올랐음을 알 수 있을까?
한 인간은 속아야만 한다. 억지로 애쓰지 않고 속아야 한다. 그렇게 속으며 지내다 보면 중력이 느슨해지는 순간이 불쑥 온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땅에 서 있을 때뿐이며 다시 떠오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다 끝내 찾지 못한 것과 떠올랐을 때의 기억이 도움을 준다. 《빈자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비서정의 말을 들이밀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게 전부인지 묻고, 누군가에게는 떠오름이 찾아오게 하며, 떠오름은 다시 땅을 딛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