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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여러분이 어디까지 <Outer Wilds>를 플레이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분의 대다수가 일상적 유희로서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배경이 없고, 게임의 다소 불친절한 태도를 고려해 보았을 때, 발제자로서 추측건데 전망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게임의 도입부에서 여러분은 "천문대로 가서 발사코드를 받으라"라는 목표를 부여받는다. 열성적인 게이머로서 이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조차 고통스럽지만, 필자는 이 태초의 목표조차 완수되지 못하였을 가능성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 중 일부라도, 한 명이라도 이 작품이 짐짓 아닌 척하면서도 사실은 여러분이 도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지점에 이르렀기를 소망한다. "이 게임에는 뭔가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 고 느끼게 되는, 경탄에 찬 "아하!" 의 순간 말이다. 그 소망을 품고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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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란 기입(Inscription)이라는 인간적 관행의 일부이다. 회화가 시각을, 음악이 소리를, 이야기가 서사를 기입하게 해 준다면, 게임은 혼자서라면 경험하기 어려웠을 특정한 양식의 행위성(Agency)을 기입한다. 그렇다면 게임, 더 좁혀 말해 비디오 게임은 어떻게 이러한 행위성을 기입하고, 플레이어가 그것을 경험하도록 이끄는가.
시네마토그래프의 기술적 구조가 영상 매체의 가능성과 한계를 형성하듯이, 비디오 게임의 '게임 루프'는 행위성의 기입과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 기반으로 기능한다. 영사기가 미리 구성된 정적 상태의 이미지들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열한다면, 게임 루프는 시간의 경과와 외부 변량인 '플레이어의 입력'을 상태에 포함하여 표현될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합성해 낸다. 시간에 더해 입력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게임의 상호작용성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는 플레이어가 어떤 입력을 할 지 창작의 시점에서는 예측할 수 없다. 이는 본질적으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기입하려는 행위성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 필수적이므로, 이 예측과 통제가 비디오 게임의 핵심 긴장을 구성한다. 창작자는 입력에 선행하여 제시되는 이미지를 미리 구성함으로서, 플레이어의 다음 입력을 유도하려고 한다. 이미지에 반응한 플레이어는 새 입력을 수행하고, 이 입력은 다시 다음 순간에 구성될 이미지의 재료가 된다. 비디오 게임에서 매 순간 제시되는 이미지는 이전 행위에 대한 응답인 동시에 다음 행위에 대한 제안이며, 창작자는 이 연쇄(게임 루프)를 통해 플레이어를 특정한 양식의 행위성으로 이끌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창작자의 제안만으로는 감상자의 응답을 보장할 수는 없다. 플레이어는 제안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알아차리고도 무시할 수 있다. 숙련된 플레이어는 제안을 인지하고도 짐짓 모른 체 하며 그 제안에 호응하기도 한다. 매체의 어떤 제안에 주목하여 얼마나 수고로움을 들일 것인지는 여전히 플레이어의 몫에 달려 있으며, 창작자의 제안과 플레이어의 수락이 함께 게임의 행위성을 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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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Outer Wilds>를 소개한 이유는, 앞서 설명한 이미지와 입력의 연쇄가 이 작품에서는 거시적인 수준에서도 끊임없이 반복되며, 그 반복 자체가 모티프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먼저 "천문대에 가서 발사 코드를 받으라" 는 명시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설정상 당신은 첫 비행을 앞둔 신참 우주 비행사이며, 발사 코드를 받아야만 우주선에 오를 수 있다. 천문대로 향하는 동안 여러 인물에게 세계의 배경을 전해 듣고, 신호 탐지기나 중력이 바뀌는 바닥 등을 체험하며 기본적인 규칙을 배운다.
천문대에서 발사 코드를 받고 우주선을 발진시키면, 발밑의 땅이 그대로 멀어지면서 하나의 둥근 행성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까지 서 있던 곳을 아무런 로딩도 거치지 않고 우주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지표와 우주가 하나의 연속적인 공간으로 이어져 있다는 이 첫 번째 놀라움은 곧 새로운 기대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눈 앞의 다른 행성에도 같은 방식으로 내려앉을 수 있지 않을까? 게임은 공간의 연속성을 보여주면서 플레이어에게 다음 행위를 제안한다.
그 제안에 호응한 신참 우주 비행사는 아마도 미숙한 조종 실력으로 우주선을 망가뜨리거나, 우주를 표류하거나, 위험한 행성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운 좋게 모든 위험을 피해 살아남더라도 22분이 지나면 태양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다시 게임의 첫 장면, 모닥불 앞에서 눈을 뜨던 순간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게임의 두 번째 놀라운 순간이다.
게임은 모른 체를 하며 당신에게 다시 "천문대에 가서 발사 코드를 알아오라"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당신은 발사 코드를 이미 알고 있다. 세계가 첫 상태로 돌아왔지만, 당신이 알아낸 사실과 풀지 못한 질문이 남는다. 그 잔여가 이번에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볼지 결정하는 조건이 된다.
"천문대에 가서 발사 코드를 받아 오라"는 제안에서 시작된 첫 탐사와 귀환을 통해, 플레이어는 다음 탐사를 구성할 두 가지 규칙을 발견한다.
이 우주의 공간은 연속적이며, 이동에는 현실과 유사한 물리 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죽거나 22분이 흐르면 모닥불 앞에서 눈을 뜨던 시점으로 되돌아온다.
이 두 규칙은 반복해서 탐사할 수 있는 유한한 4차원 시공간을 마련한다. 플레이어는 앞선 탐사에서 얻은 지식으로 어느 위치를 어떤 시점에 방문할 지 계획한다. 이 우주의 공간은 당신이 관심 지점으로 이동하다가 흥미를 잃지 않을 정도로만 넓고, 시간은 미스터리를 발견하면서도 그 전모를 단번에 파악하기는 어려울 정도로만 길어서, 항상 다음 탐사를 기약하는 전제 조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이 우주에는 무시하기에는 너무 흥미로운 '치즈 가루'들이 흩어져 있다. 당신은 우주를 유영하다가 태양에 빨려들어가 비명을 지를 수도 있고, 모닥불에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다가 초신성이 폭발하는 것을 볼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끄고 세금 계산서를 떼러 가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당신은 수고로움을 들여 게임이 제시한 제안에 기꺼이 반응하게 된다. 질문을 품고 흥미로운 곳에 찾아가, 게임이 제공한 도구와 지식을 동원해 탐구하면, 세계의 새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게임은 "무언가가 있다"고 응대하며, 그 대답은 다시 다음에 무엇을 해볼지를 제안하는 단서가 된다. 하나의 프레임이 다음 입력의 조건이 되듯, 한 차례의 탐사에서 경험한 세계는 다음 탐사의 행위를 이끈다. 이미지와 입력의 연쇄가, 거시적인 수준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다.
이 경험에는 세 개의 루프가 포개져 있다. 입력을 받아 세계의 상태와 이미지를 갱신하는 기술적 기반으로서 '게임 루프', 같은 세계를 거듭 탐사하도록 마련된 '시공간의 루프', 그리고 그 조건 속에서 플레이어가 질문하고 탐구하며, 다음 질문을 만들어 내는 '행위적 경험의 루프'이다. 앞선 두 루프는 세 번째 루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지만, 세 번째 루프가 성립하려면 플레이어의 수고로운 행위가 필요하다. 창작자의 제안과 플레이어의 응대가 우주선과 행성처럼 거듭하여 랑데부할 때, <Outer Wilds>가 기입한 호기심 어린 탐구의 행위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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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게 다 무슨 일이었을까? 왜 이 우주는 22분 동안 반복되었던 걸까? 플레이어가 탐구를 통해 밝혀내는 전모는 다음과 같다.
고대 문명 '노마이'는 '우주의 눈'이라는 신비로운 천체의 신호를 추적해 주인공의 태양계를 방문한다. 그들은 탐사선을 보내 우주의 눈을 관측하려고 한다.
탐사선을 한 번 발사해 우주의 눈을 발견할 확률이 극히 낮아서, 수많은 방향으로 탐사를 반복할 방법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노마이는 '재 쌍둥이 프로젝트(Ash Twin Project)'를 설계한다. 탐사선의 탐사 결과를 22분 전의 과거로 보내, 매번 다른 방향을 탐색하면서 이전 시도의 결과를 축적하는 장치였다.
탐사선이 반복 끝에 우주의 눈을 발견하면, 기억을 기록하는 '조각상'이 주변 인물과 연결된다. 연결된 인물은 루프를 넘어 기억을 유지하므로, 탐사의 성공을 확인한 후 프로젝트를 중단할 수 있었다.
재 쌍둥이 프로젝트를 가동하려면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 했다. 노마이들은 인위적인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려 하지만 실패한다. 프로젝트는 필요한 동력을 얻지 못한 채 남겨지고, 노마이 문명은 외부에서 날아온 혜성에 의해 멸망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같은 태양계에 주인공의 종족이 탄생한다. 이 시점에서 태양은 자연적 수명을 다했고,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다. 이 에너지가 남겨진 재 쌍둥이 프로젝트를 조용히 가동시키고, 우주의 눈을 찾는 반복이 뒤늦게 시작된다.
약 9백만 번의 반복 끝에 재 쌍둥이 프로젝트의 탐사선이 우주의 눈을 발견한다. 천문대에 전시되어 있던 조각상이 활성화되고, 마침 발사 코드를 받으러 천문대에 방문한 주인공과 연결된다.
이 때부터 주인공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유지하게 된다.
노마이의 계획대로라면 탐사선이 우주의 눈을 발견한 후에는 정보를 22분 전으로 다시 보낼 필요가 없었고, 따라서 태양을 다시 폭파시킬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마주한 태양은 이미 자연적 수명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재 쌍둥이 프로젝트를 중단하더라도 태양은 반드시 폭발한다. 발사 코드를 받아 첫 비행을 떠난 그 날이 태양계의 마지막 22분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이 태양계만이 아니었다. 곳곳에서 별들이 폭발하고 있었고, 우주 전체가 끝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후반부 게임은 노마이가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우주의 눈'으로 관심을 돌린다. 게임은 그곳에 종말을 되돌릴 답이 있다고 명시하지 않지만, 탐구를 통해 거듭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온 플레이어에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최후의 미스터리는 마지막 희망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힘겹게 도달한 우주의 눈에서도 이 우주의 종말을 되돌릴 방법은 발견되지 않는다. 우주의 눈은 양자물리학적 성질을 가진 천체로, 관측자가 그 안에서 중첩된 무수한 가능성을 하나로 확정함으로서 다음 우주의 탄생에 참여하게 하는 씨앗으로 표현된다. 다음 우주의 탄생과 함께, 우리가 탐사해 온 우주는 종말을 맞이하고, 그 너머에서 새로운 우주가 시작된다. 우리가 플레이해온 게임은 여기서 끝을 맺게 된다.
<Outer Wilds>에 일차적으로 기입된 탐구와 발견의 반복적 행위는, 피투된 유한한 존재가 세계를 이해해 나가는 일을 스스로 자신의 목적으로 삼아가는 실존적 기획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지 속에서 질문하고, 그 질문에 시간과 수고로움을 들이며, 자신을 세계의 탐구자로 만들어 가는 행위를 수행해 나간다. 게임은 이 행위성을 낭만적인 이미지로 표현한다. 각자 악기를 들고 탐험에 나선 탐사대, 모닥불 곁에서 마쉬멜로우를 구워 먹으며 밤하늘의 미지를 궁금해하는 모습은, 이 반복되는 우주를 알아보고 싶은 것 이상으로 머물고 싶은 세계로 애착해 달라는 부탁처럼 느껴진다.
세계를 탐구하여 미스터리를 파악했다고 해서, 그 애착하는 세계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 속의 우주는 구성된 것이지만 현실의 우주를 모사한 것이고, 우리의 우주가 그러하듯이, 별은 우리가 그 죽음의 원리를 이해했는지와 관계 없이 죽으며, 우주는 우리가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끝을 미뤄주지 않는다. 이렇게 구성된 우주가 끝내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이해와 소망에 귀속되지 않는 자연(自然)이다.
게임이 종국에 기입하려는 행위는, 그렇게 애착을 갖게 된 세계와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놓아주는 일이라고 읽고자 한다. 이 작별에서 앞서 설명한 세 루프가 이루던 경험의 종결이 하나의 드라마로 포개진다. <Outer Wilds>는 자신의 형식적 종결을 우주와의 작별로 서사화하며, 플레이어에게 그 작별을 직접 수행하게 한다. 우리가 그토록 알아보고 머물고 싶었던 세계가 우리의 바람과 무관하게 끝난다는 사실이, 이 놓아줌을 통해 숭고의 경험으로 다가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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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제안에 의해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었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주선을 뜻대로 조작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을 수도 있고,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실제 행위로 옮기는 데 필요한 수고가 너무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필자에게는 발견으로 이어졌던 행위의 연쇄가, 누군가에게는 반복되는 충돌과 길잃음으로 돌아왔을 수도 있다. 혹은 단순히 이 작품에 그만한 수고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더라도 좋다. 앞서 말했듯이, 창작자의 제안은 플레이어의 수락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Outer Wilds>가 탐구하는 행위를 어떻게 낭만적 경험으로 구성하는지 이야기했다. 글의 처음에서 필자는 여러분 중 한 명이라도 "아하!"의 순간에 이르렀기를 소망한다고 말했었는데, 그 소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경험도 함께 듣고 싶다. 게임이 기입하려는 행위는 실제로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의 능력과 기분, 시간과 관심 속에서 실현되므로, 그 랑데부가 어디에서 이어지고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 게임이 건넨 제안에 어떻게 응답했는가.